설립취지

(사)면암최익현선생기념사업회

1.설립취지문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조국을 지켜내는 거룩한 행위를 ‘호국’이라 이름하고, 그 거룩한 삶에 대하여 국가가 행하는 보답을 ‘보훈’이라 부른다. 호국이 국민의 의무라면, 보훈은 국가의 책무이다. 그런데 호국은 이미 가지고 있는 조국을 지키는 행위이다. 
 국조 단군께서 개국하신 이래 반만년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우리의 아름다운 조국 강토를 면면히 지켜온 우리 조국은 동방의 밝은 빛과 함께 떠오르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였다. 삼천리 방방곡곡은 새벽처럼 평화롭고 금수강산의 오곡백화는 풍요로웠다. 백성들은 다투지 아니하고 가는 길조차 서로 양보하는 미풍양속의 예의 바른 군자들의 나라였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토록 일구어온 아름다운 아침의 나라는 구한말에 이르러 저 잔인무도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무력에 의하여 강탈당하였고, 우리의 조국산천은 왜적들에 의해 무참히 유린되는 전대미문의 치욕을 감내해야 했으니, 실로 땅을 치고 통곡을 금치 못하는 오열의 역사였던 것이다.
 이러한 일제의 불의 앞에 우리의 선조들은 의로운 깃발을 높이 세우고 정의로운 전쟁을 선포하니, 우리 역사는 그분들을 의병이라 부른다. 대포로 중무장한 일제를 의로움 하나로 상대해야 했기에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밖에 없었으니, 이렇게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자신의 목숨을 바친 분들을 우리는 순국선열이라 칭하고 있다.
 순국선열 가운데 큰 인물이 계셨으니 바로 군자 중의 군자이신 면암 최익현 선생이시다. 면암선생께서는 망국의 시기에 오직 우국충정으로 의병전쟁을 창도하시었고, 마침내 적의 땅에서 비장하게 순국하신 한국 선비의 표상이시었다. 
 민족은 그 가는 길이 아무리 어려워도 남들이 대신 살아 줄 수가 없다. 국가는 그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마지막 자살할 권리마저 가지고 있지 않다. 민족국가의 지상과제는 끝까지 자신의 생명력으로 살아남는 일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순국선열들의 희생으로 조국은 마침내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다. 순국선열들의 희생이 씨앗이 되어 마침내 조국을 되찾았기에 그 후에 호국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열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을 다시는 순국의 희생이 필요 없는 나라로 지켜내는 일은 이제 우리 후손들의 책무이다. 하지만 또다시 조국이 심각한 국난에 직면한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대처하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면암 선생의 지고무상(至高無上)한 순국정신을 기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광복을 맞이하여 귀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 선생은 면암 선생을 기리는 사당인 모덕사를 찾아서 환국고유제(還國告由祭)를 봉행한 후에 면암선생의 기상과 공적을 자손만대에 기리고자 ‘면암선생지정회(勉菴先生至正會)’를 창립하셨다. 그 후 6·25 전쟁 중인 1953년 3월에는 환도고유제(還都告由祭)를 국회의장 신익희 선생께서 모덕사에서 봉행했으니, 선생을 모신 모덕사는 대한민국의 정신적 고향이었다.  
 지금 우리는 안타깝게도 서구 물질문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선생의 조국과 민족에 대한 충절과 의리정신은 빛을 잃고 오히려 퇴색된 나머지 그 본질조차 오도되는 경향마저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 어찌 후손된 자들의 도리이겠는가? 이제 면암 선생의 백절불굴한 호연지기와 백범 선생의 ‘면암선생지정회’ 창립의의를 참되게 다시 잇고자, 여기에 그 사단법인의 설립취지를 감히 밝히는 바이다. 

2. 연혁

  보훈은 국민통합을 이루고 위대한 국가로 가는 길이다. 애국의 출발은 바로 보훈인 것이다. 당연히 보훈은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기본이 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면암 선생께 최고의 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여 선생의 공을 기리고 있다.
 정부와는 별도로 면암 선생을 추모하는 수많은 일들이 시간적으로는 이미 1 백여 년 전부터, 공간적으로는 전국에 걸쳐 이어져오고 있으니, 선생의 거룩한 훈업(勳業)이 찬란하기만 하다. 이제 그간의 면암 선생을 기리는 다양한 사업들을 하나로 모아 이 시대에 집중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절실하다.   

1) 1946년 4월 23일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을 비롯한 이시영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고유제를 면암 선생을 모신 사당인 모덕사에서 올린다. 이 때 면암선생지정회(勉菴先生至正會)를 조직 회장을 백범 선생이 직접 맡으셨다.

2) 1953년 6·25 동란 중에 서울 수복을 고하는 환도고유제를 국회의장 신익희 선생이 봉행하였다. 이후 면암선생지정회장을 신익희 선생께서 맡았다. 

3) 2009년 4월 13일 청양 모덕사에서 ‘면암최익현선생기념사업회’ 창립 발기인 총회를 개최하여 면암선생지정회를 이어가기로 결의하였다. 

4) ‘지정회’와는 별도로 모덕사 등 선생을 모신 사당을 중심으로 선생을 기리는 분들의 모임이 ‘모덕회’를 결성하여 지금까지 100여년을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선생이 태어난 경기도 포천시에는 ‘면암최익현선생숭모사업회’가 활동하고 있다. 

5) 이 밖에도 학계에서는 ‘면암학회’가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활동을 하고 있으며, 문화계에서는 연극(국립극장 ‘함성’. 1976년 /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 2010년 표제순 연출 전국 순회공연), 드라마(‘너희가 나라를 아느냐’. MBC 2002년) 등이 있었다. 한편 면암선생을 기리는 판소리 ‘충절가’(양은희 창, 김세종 글)가 만들어졌으며, ‘면암찬가’(김진우 작사. 서우석 작곡)가 만들어 졌다. 

6) 매년 선생의 거의 날인 4월 13일에 충남 청양 모덕사에서 제례를 모시는 등, 전국의 사우와 유적 수십 여 곳에서 선생을 기리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 장소는 다음과 같다.

● 면암선생 전국 사우 및 유적 현황

모덕사 (충남 청양군)
채산사 (경기 포천시)
영곡사 (전북 진안군)
지산사 (전북 순창군)
시산사 (전북 정읍시)
도동사 (전북 고창군)
대산사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악사 (전남 함평군)
오강사 (전남 곡성군)
봉산사 (전남 구례군)
춘산사 (전남 화순군)
평산사 (전남 무안군)
모충사 (전남 보성군)
이산묘 (전북 진안군)
아산영당 (경북 울진군)
운암영당 (경남 하동군)

삼충단 (경기 가평군)
현충단 (전북 군산시)
두류단 (전남 신안군)
무성서원 (전북 정읍시)

면암선생 묘 (충남 예산)
적려유허비 (전남 신안군 흑산도)
유적비 (제주도 제주시 오라동)
문연사 (제주도 재주시 일도2동)
적거유허비 (제주도 제주시 일도2동)
유허비문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대마도순국비

동상 (충남 청양 칠갑산)
동상 (충남 청양 모덕사)
동상 (경기 포천시) 

3. 사업계획

  면암 선생 순국은 바로 조선의 선비정신과 이 선비정신에서 체득한 의로움이 그 출발이었다. 조선의 선비정신과 의로움이 나라를 구하고 역사를 이어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면암 선생을 현창함으로 21세기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의 원형으로 선비문화를 재건하여 민족의 동질성을 강화하고, 국가와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현양하여, 오늘의 현실이 마주한 다양한 난제들을 풀어가는데 이바지 하고자 한다.  

-교육이 아닌 학습 이론이 아닌 실천(이론성리학에서 실천성리학으로) 앎과 삶
-기념일 행사 (탄신 의거 순국 등 면암학회운영)
-각종문화행사
-상소문 쓰기
-서화회
-출판 (면암집 번역 등)
-선비의인상 제정 시상 

4. (사)면암최익현선생기념사업회 발기인 명단

발기인 대표 김동대 (인)

                                         발기인 김광수 (인)

                                         발기인 허복만 (인)

                                         발기인 육철희 (인)

                                         발기인 최진홍 (인)

                                         발기인 이천복 (인)

                                         발기인 왕원근 (인)

                                         발기인 류재섭 (인)

단기 4354년(2021년) 1월 25일

사단법인 면암최익현선생기념사업회
연혁과 취지